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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멀리하면 충동적인 행동 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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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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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글과 담 쌓은 세대] [上] 독해·작문 못하는 아이들
초등 4학년 107명 평가 절반이 지문 파악 못해
전문가들 "활자 멀리하면 충동적인 행동 하게 돼"




인터넷과 TV, 게임과 휴대전화에 익숙해진 '활자이탈(活字離脫) 세대'의 학습·의사소통 능력에 비상이 걸렸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글과 책에서 멀어지면서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작문은 물론, 남이 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독해 능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창의력과 사고능력·정서에도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교육 현장의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교과서 소리 내 읽기를 좀처럼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읽기를 시키면 워낙 많은 학생들이 제대로 읽지 못하고 더듬거려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교사들 말이 사실일까. 본지가 지난 10월 중순 서울 지역 5개 초등학교 4학년 학생 107명에게 신문기사를 지문(地文)으로 주고 이와 관련된 독해·작문 문제를 낸 뒤 답을 쓰도록 하는 방식으로 읽기·쓰기 능력을 평가해보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절반 가까운 학생이 주어진 지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문법에 맞는 문장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주어(主語)와 술어(述語)의 호응이 전혀 되지 않는 문장들도 허다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비판적 사고력도 부족했다.


▲ 초등 4학년 학생들이 지문을 읽고 써낸 답안… 초등학교 4학년에게 신문 기사 2개‘( 죽음과 맞바꾼 50대 남성의 마지막 우정’,‘ 700년 만에 핀 연꽃’)를 제시하고 내용을 요약하라는 문제를 내자 나온 일부 답안지. 조사 대상 107명의 절반이 글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고, 주어·서술어 호응이 되지 않거나 글씨가 삐뚤삐뚤해 알아볼 수 없는 답안도 적지 않았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읽기도 쓰기도 서툰 아이들

평가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에 맞는 '700년 만에 핀 연꽃'과 '죽음과 맞바꾼 50대 남성의 마지막 우정' 등 신문 기사 2개를 지문으로 제시한 뒤 ▲기사를 간단히 요약하고 ▲내용을 이해해 질문에 답하고 ▲기사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짤막한 글을 작성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본지 의뢰에 따라 평가를 총괄진행한 서울 금성초등학교 소진권 교사는 이 결과를 이해력·창의적 사고력 등 8개 항목으로 나눠 상·중상·보통·중하·하 등 5개 단계로 채점했다. 보통 이하는 초등 4학년에게 요구되는 학습 수준에 미달한다는 뜻이다.

채점 결과 시험을 치른 107명 중 52명(48.6%)이 지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4학년에게 요구되는 지문 이해력을 보여준 학생은 55명(51.4%)에 불과했다.

문장을 제대로 쓰지 못한 학생은 58명(54.2%), 문단 나누기 능력이 없는 학생이 94명(87.9%)에 달했다. '함안군은 9개의 꽃대 가운데 2게('개'를 잘못 쓴 것) 꽃대에서 6~7개일 각 한 송이씩 피고, 요새 홍련과 달리 꽃잎 수가 적고, 길이가 길다'라는 등 주어·술어의 호응이 전혀 안 되는 문장을 써놓은 경우도 많았다.

또 '김씨가 열시하힘을써다. 그래도이씨는껴안은채로숨을검더다. 김씨를 찾아도 지하어 있다 것바'라든지 '친구가 놈에 빠지려하자 친구를 도와서 온 힘을 다해 끌어올리고서 죽었다'는 등 문장원칙이나 맞춤법에 맞지 않는 답도 적지 않았다.

'씨앗의 입장이 돼 글을 써보라'는 문제에는 자신의 생각만을 늘어놓은 학생이 많았고 비판적 사고력을 보여준 학생은 52명(48.6%)에 그쳤다. 소진권 교사는 "많은 학생들이 이해력이 부족해 내용을 요약하지 못하고 그대로 옮겨 놓거나 핵심 내용이 아닌 부수적인 내용을 써놓았다"고 말했다.

◆중학생도 '더듬더듬 책읽기'

한국교총이 본지 의뢰로 지난 10월 8~10일 전국 초·중·고 교사 4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6.6%의 교사가 '과거에 비해 글을 읽고 이해하는 학생들의 능력이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의 독서량과 독서의 질이 떨어졌다'는 응답은 59.8%, '글짓기, 문장 이해력, 언어 구사력이 신체·정신 발달보다 낮다'는 응답은 76.5%였다.

전문가 연구에 따르면, 독해력이 떨어지면 국어뿐 아니라 사회·영어·과학·수학의 학업성취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글 읽기에 소홀하면 어느 과목에서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렵다는 뜻이다. 가톨릭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유선자씨의 논문('중학생의 독서능력과 학업성취도의 관계 분석')은 학업성취도에서 독해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국어 33.3%, 사회 29.8%, 영어 28.9%, 과학 27.7%, 수학 22.6%라고 분석했다.

학생들이 책 읽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현상은 초등학생뿐 아니다. 중학교에서도 책을 소리 내 읽는 시간에는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

서울 강북 C중학교 정모(15)군은 "선생님이 책 읽기를 시키면 더듬더듬 읽는 친구들이 절반쯤 되고 한 줄 건너뛰고 엉뚱한 부분을 읽거나 읽었던 문장을 반복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이모(15)군도 "아예 엉뚱하게 말을 지어내며 읽기도 하는데 그렇게 읽어놓고도 내가 어떻게 읽었는지 모른다"며 "우리 반 열 명 중에 세 명꼴로 이런 수준인 것 같다"고 했다.

학생들이 소리 내 읽는 데 어려움을 겪자 수업시간에 교과서 읽기를 시키지 않는 경우도 늘었다. 읽기를 시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엉뚱하게 읽는 학생들 때문에 수업분위기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서울 S초등학교의 한 사서교사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책읽기 수업을 마련했지만 책장을 기어올라가거나 바닥에 뒹구는 등 책 읽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신학초등학교 조재윤 교사는 매일 아침 20분간 독서시간을 마련해 읽기에 애를 먹는 학생들을 찾아내 특별지도를 한다. 그런데 책 읽는 게 힘들어 수십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안을 왔다갔다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조 교사는 "그런 행동을 며칠 동안 계속 반복하는 학생은 대개 읽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라고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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